
2024년 1월 20일 발매, 구병모 저
이하 내용은 작가가 의도한 방향과는 전혀 다르며, 무지 때문에 오독하고, 아무튼 틀리고 다른 주관적인 내용일 수 있음
감상평이라기보단 내 에세이~자아성찰 편~에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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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는 원치 않겠지만(그리고 실제로도 이 책 내에서 원하지 않는 듯 보였지만) 결국 감상문을 쓰려면 이 작가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때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선생님들만 대여할 수 있는 어른 도서 코너에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었다.
사서 선생님과 유별나게 막역한 사이였던 나는, 선생님을 졸라서 그 책을 멋대로 대여했고,
다 읽은 다음 세계가 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정도로 내게는 신선한 책이었다.
평생의 지식은 학생 때 읽은 책으로 결정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존재하는 만큼,
실제로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수많은 책과 함께해서 연령대에 비해 이것저것 꽤 많이 읽은 편이었는데도,
구병모 작가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책을, 더 나아가 작가를 인지하게 된다.
뭐 그런 계기로, 구병모 작가의 첫 작품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로 나오는 모든 신간을 챙겨 읽고,
제때제때 읽진 못해도 신간이 나왔다 하면 반드시 구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책을 읽는 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었고, 혹은 더 자극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 많아서
작가님의 작품은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은연중에 인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버드 스트라이크>, <상아의 문으로>는 읽어 보려다가 여러 번 포기했었고,
그것들 모두 내 자취방에 존재하지만 <단지 소설일 뿐이네>를 먼저 선택한 이유는 일단...
책이 얇고 간소(해 보인)(하)다. 실제로 158p 정도의, 비교적 간편한 사양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짧다고 해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으므로...
작가님에 대한 호기심이나 혹은 어떤 의무감으로 집어들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무튼 도파민 디톡스를 시도하고 있기에(일단은 SNS, 유튜브, 게임, 음주 등 금지) 퇴근하고 운동을 다녀온 다음에는 딱히 집에서 할 게 없어서 잠을 자려다가 이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사설 왤케 김?
아무튼 이 책... (여기서부터 또 사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데 비해 도전정신이라는 게 매우 얄팍해서,
102년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의 공모전에도 도전해본 적 없고 기껏해야 학교 글쓰기 대회 정도나 나가 보았다.
초등학생 때는 으레 입선해서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내게 글쓰기 재능이 있다고 했고 나도 내가 그런 줄 알았는데,
중학교만 올라오고 나니 나보다 책 많이 읽고 나보다 글 잘 쓰는 애들은 수두룩빽빽하게 있었다.
약간의 굴욕감과 패배감만 빼면 어쨌든 나는 항상 글을 썼다. 매일매일.
고등학교 때도 11시에 하교하거나 말거나 집에 와서 컴퓨터 켜고 조금씩 적을 정도로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왜 과거형이냐면 지금은 그렇게 못 하니까...
상상력이 빈약한지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건지, 원래부터가 그런 사람인 것 같지만 내 머릿속 상상의 샘은 급속도로 바닥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뭘 써야 할 지 이 처참한 문장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그냥 써라. 안 써져도 써져라. 그렇게들 말하지만 결국 금전이 오가지 않는 이상 강제력은 없고 단순히 나의 의지에 따를 뿐.
그렇게 안 썼더니 일이 년이 후다닥 지나갔다.
인생에서 글을 써 온 시기는 그렇게나 많았는데, 안 쓰기는 또 너무나 쉬웠다. 그게 좀 허탈하고 슬프고.
아무튼 위에 서술한 내용이 지금 내 상태인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소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내가 쓰는 건 언제나 소설.
내가 만들어낸 가공인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작가가 만든 캐릭터를 빌려다 쓰는 형태.
그렇기에 대단한 상상력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한…
(뭐 1차 소설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적어도 2차 창작은 캐릭터의 '본체'가 있지 않습니까?)
책 한 권을 '소설'에 대한 문장에 할애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위로가 됐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작법 책을 읽는 것보다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듯한...
글쓰고 글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책.
구병모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가령,
불호 리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가 뭔지 아십니까? "공감도 안 되고 감동도 재미도 없고" 입니다.
좋아요 싫어요, 다른 말로는 공감 비공감, 또는 올려 내려, 강추 비추, 버튼 클릭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나는 현실에서
(...)
감동의 동이 움직인다는 뜻인가요? 요즘 감동의 동은 같을 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같은 것을 느껴야 최소한의 포만감을 얻고, 기초 생존이 위협받는 고물가 시대에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안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심과 위안이 트렌드 형성의 근간을 이룹니다. (77p)
혹은 작가님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고 공감도 되어서 재미있었던 부분.
"마녀는 너무 일찍 노쇠했고 지팡이는 꺾여버린 듯. 이제 놓을 때가 됐음."
"뼛속까지 메이저 기질인 사람이 기를 쓰고 마이너를 자처하고자 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우려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을 때 제일 자연스러운 법."
"최근작 무엇을 찍먹해보아도 예전 같은 맛이 도무지 없어. 제발 돌아와주세요.ㅠㅠ"
그럴 때면 나는 예전 같은 맛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그보다는 내가 왜 예전 같아야 하는지를 반문하게 되네. (26p)
이런 것들. ㅋㅋ 개웃기고 슬픔.
구병모 작가님은... 할 얘기를 담아두고 사는 분이시라는 생각이 드는데,
위저드 베이커리나 아가미 같은 유명작부터 먼저 접한 사람들은 작가님의 최근작이 어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신규 유입층이라거나 소위 말하는 알못ㅅㄲ들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본인은 구병모 작가의 작품을 거진 읽어 보았고 평할 정도로는 된다! 하지만 이건 예전의 그 느낌이 아니다! 하고 괜히 쿠사리 먹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랄까 (근데 이런 소리 하는 저도 그들을 욕하고 싶어하는 사람인 거겠죠)
나다운 게 뭔데?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글을 써도 작가는 작가 본인인 법. 노선을 바꿨네 작품 좀 팔아볼려고 안달이 났네 이런 소리를 해도 결국은 작가 본인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작품 내에서 그게 표시가 날 수밖에 없는데. 그냥 이런 작가였던 겁니다.
(물론 수많은 예외도 있겠습니다)
뭐랄까... 독특한 글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걷고 또 걸으면서, 회고하면서, 아니 혹시 이것들이 전부 꿈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의심하는 것보다는 그저 생각을)
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쓴 글. 동시에 사람들은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면서 쓴 글.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또 어떤 부분은 너무나 시니컬하여 설마 이 정도일까 의심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돌다리를 건너듯 읽어 보았다.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재밌다.
정작 책 얘기를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왜냐면 나는 허접한 글을 쓰는 상상력 빈약한 사람이니까...
제대로 된 감상문을 적기에는 나는 아는 작법도 꿰고 있는 미장센도 적확한 단어 선택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
140페이지부터 폭발하듯이 재밌다. 정신 차리니 다 읽었어.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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